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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산파법


소크라테스 [Socrates, BC 469~BC 399]

 

 

국적 - 고대 그리스                                                   

활동분야 - 철학

출생지 - 그리스 아테네

 

 

1) 인간 중심의 철학
2) 인간 : 보편적 理性을 지닌 존재 
3) 보편적, 절대적 진리 : 이성을 통한 인식
4) 이성주의 철학의 선구⇒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5) 보편적, 절대적, 객관적 윤리관·진리관
6) "惡法도 法이다.” : 진리의 객관적 실재 몸소 실천 
7) 지행합일설 (知行合一說)과 지덕복 (知德福) 합일설

* 보편적 이성에 의해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진리와 지식을 발견하고 실행할 때 선하고 행복한 삶이 실현됨
* 理性⇒眞理 발견과 실천⇒幸福, 善         
* 행복 : 참된 앎(眞知)을 통해 덕(德)을 쌓아갈 때
* "不德은 無知에서 생긴다.”: 無知⇒惡⇒不幸
* 주지주의적 윤리관의 입장

 

8)“너 자신을 알라.(Know yourself)” :  자신의 무지를 자각(自覺)하라는 뜻
9) 대화법 (문답법) : 반어법 (反語法)과 
산파술(産婆術)  
10)임종전 최후의 말 -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오피스에게 닭 한마리를 빚졌네. 자네가 잊지말고 이 빚을 갚아 주겠나?"


 


아버지 소프로니스코스는 석조가(石彫家)였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으며, 어머니 파이나레테는 산파술(産婆術)에 능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어린시절부터 <다이몬(禁止)의 소리>를 듣고, 자주 깊은 몰아상태를 경험하는 <신들린 사람>이었다고 한다. 
만년에는 후대에 악처로 유명했던 크산티페와 결혼하였다.


펠로폰네소스전쟁 때에 중장보병(重裝步兵)으로 북그리스로 2회, 보이오티아로 1회 종군했으며, 이때 훌륭한 인내심과 침착한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종군 때 이외에는 아테네를 떠난 적이 없었는데, 젊은 시절에는 자연에 대한 연구도 했으나 그 뒤에는 인간문제에 관해서만 관심을 기울여, 아테네의 거리와 시장·체육관 등에서 대화와 문답을 하면서 지냈다. 

그의 인격과 유머가 있는 날카로운 논법에 공감하는 젊은이들이 <소크라테스의 동아리>를 형성하였고, 플라톤도 그 모임에 들어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펠로폰네소스전쟁 종결 5년 뒤인 BC399년 신에 대한 불경죄라는 죄목으로 고발을 당해 재판에서 사형 받아 일생을 마쳤다. 
 

그는 저서를 남기지 않아 플라톤의 대화편(주로 초기)과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관계 저서를 통해 그의 생애와 사상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이 주장하는 <덕(德)>과 세상의 이른바 지자(知者)라는 사람들의 <지(知)>에 대해 근본적으로 묻거나 밝혀내려 했다. 덕은 지와 동일시되며 혼(魂)의 비합리적인 부분 및 감정 등을 배제한 지의 추구만이 참으로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지가 원래 결코 실수하는 일이 없는 절대 확실한 것이라면 참된 지자는 신뿐이며, 우리 인간은 선미(善美)의 사항을 어느 한 가지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존재라고 하였다. 이런 자각을 하게 된 것은 <소크라테스 이상의 지자는 없다>고 한 델포이의 신탁(神託)이었다. 소크라테스는 그 뜻을 해명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지자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사람들을 음미하며 편력한 결과,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는데도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자신만은 무지를 자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신탁의 참뜻은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빌려 모든 인간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덕이란 무엇인가> <정의(正義)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항을 음미, 논박하며 무지를 깨닫게 하는 활동을 <신명(神命)>으로 알고 그 스스로에게 부과한 것이었다. 이 문답의 과정에서 제시된 지의 기준의 엄격성, 논리와 방법에 대한 명확한 의식, <무엇인가>라고 하는 물음에 담겨진 본질에 대한 지향 등은, 그의 생사에 대한 본연의 자세와 함께 철학에 커다란 전환과 비약을 가져다 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dialektike)은 질문과 응답의 형식을 통해 개념을 규정해나가는 학습 방법으로, 이 방법을 사용할 때는 상대방의 질문에 대해서 솔직하고 간결하게 대답할 것, 또 질문된 사항에만 대답함으로써 논점을 흐리지 않을 것 등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 대답과 모순되는 사례(事例)를 질문자가 다시금 제시함으로써 그 모순 사례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고차(高次)의 규정을 구하는 식으로 문답은 진행된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대화 방법인 문답법은 소극적 측면과 적극적 측면으로 구성된다. 그것은 무지(無知)의 자각(自覺)을 일깨우는 소크라테스적 반어(反語)로서의 소극적 측면과 새로운 사상을 낳도록 돕는 기술 즉 산파술로서의 적극적 측면을 말한다. 문답법의 소극적 측면으로서의 소크라테스의 반어법은 대화 속에서 물음(즉, 反語的 물음)을 통해 상대자를 아포리아에로 유도함으로써 상대자 자신이 스스로 무지(無知)함을 깨닫게 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아포리아(aporia)란 대화법을 통하여 문제를 탐구하는 도중에 부딪치게 되는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말하는데, 이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것으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이나 관점에서 새로이 탐구하는 출발점이 된다. 문답법의 적극적 측면으로서의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상대방이 제시한 주장이나 논설에 대해 질문을 거듭함으로써 개념 규정을 음미하고 당사자가 의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상을 낳게 하는 방법이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스스로 이제 새로운 지혜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은 없으나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지혜를 낳을 수 있도록 돕고 또 그 지혜의 진위(眞僞)를 스스로 식별할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있다고 하면서, 자기의 활동을 어머니의 직업인 산파에 비유하여, 스스로 산파술이라고 불렀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문답법을 <사물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한 학문적 방법이라 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제시한 철학의 길이란 사람들이 대화 속에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음으로써 근원적인 무지를 폭로해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질문의 내면 속에 감춰져 있는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함이요, 질문하도록 만들고 있는 근원 자체를 명료하고 정확하게 알기 위함인 것이다.




[출처]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작성자 니나니누 

http://blog.naver.com/mygjhg/110003133450